잦은 비 소식과 번번이 엇나가는 예보에 뜻대로 나들이 계획을 할 수 없는 계절이다. 궂은 날씨에 갑작스럽게 행선지를 바꿔야 할 때, 예비 리스트로 갖고 있기 좋은 서울의 공간들을 소개한다. 일명 비멍하기 좋은 통창 카페부터 꿉꿉한 공기를 피해 쉬어갈 수 있는 실내 공간 등을 담았다.
통창 카페
빗줄기가 깨끗한 창을 마구 때리는 것이나 빗자국이 바닥을 메우는 것을 보는 건, 어쩐지 명상 효과까지 있는 듯하다. 번뇌는 잊고 통창 너머로 쏟아지는 비를 보면서 커피 한잔하고 싶을 땐 포비 브라이트 광화문점에 가자. 햇살 좋은 날 가도 기분이 쉽게 풀리지만 비 오는 날 가면 높은 창문이 비 내리는 장면을 담은 스크린 같아서 마음이 고요해진다.
테라스로 유명한 위커파크 웨스트도 있다. 무성한 석촌호수 가로수를 마주하고 있어 시야가 청량하다. 영화 ‘트윈 픽스’를 닮은 펠트커피 청계천점은, 빽빽한 건물과 광장을 아우르는 도시의 감각을 즐기는 이들에게 만족스러운 전망을 선사할 거다. 양쪽으로 창덕궁과 종로가 내려다보이는 텅도 좋다.
파전과 칼국수
그게 기분 탓일지언정 파전이나 칼국수 같은 음식은 빗소리와 함께 먹으면 더 맛있는 것 같다. 파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회기 파전골목이다. 노천파전, 이모네왕파전 등 노포가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다. 광장시장 원조순희네빈대떡이나 사당 전주전집, 한남 강가네맷돌빈대떡 등 회기 밖에도 막걸리와 딱인 이 안주를 찾아볼 수 있다.
국물이 따뜻한 칼국수은 비 오는 날 몸을 데우는 그만이다. 삼청동 터줏대감 황생가칼국수는 여름엔 콩국수가 별미라서 날씨 가리지 않고 줄 서서 먹야야 하는 식당이다. 성수엔 넓적한 생면이 일품인 산내골칼국수, 연희동엔 자신있게 동네 이름을 내건 연희동칼국수, 잠실엔 맑은 국물이 깔끔한 토마루해물칼국수가 있다.
예술영화관
비 오는 날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만만한 목적지가 되어 주지만 개봉작들이 언제나 재밌는 건 아니다. 그럴 때 고심해 짠 기획전이 있는 서울 곳곳의 예술영화관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은 괜찮은 방법이다. 랜덤박스처럼 시간대 맞는 영화를 골라 보는 거다.
광화문 인근에는 영화 팬들이 사랑하는 에무시네마와 씨네큐브가 있다. 상영작이 192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난생처음 보는 형식의 영화에서 뜻밖의 영감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이화여대 안에 있는 아트하우스 모모와, 돌비 애트모스 시스템이 있는 연희동 라이카시네마도 프로그래밍이 흥미롭다. 성수에는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관을 지어버린 디자이너들의 뒷이야기로 유명한 신흥강자 무비랜드가 있다.
전시
서울시립미술관의 상설전은 언제나 무료라서 비가 내리면 가볍게 들러 시간을 보내기 좋다. 타이밍 좋으면 흥미로운 특별전도 무료로 만날 수 있다. 지난해 문을 연 서울시립미술관 미술아카이브는 높은 층고에 통창을 자랑하는데, 트인 공간에서 무작위의 예술 서적을 읽는 것은 생각을 열어줄 거다. 고즈넉한 리움미술관이나 넓은 중정이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어떤가. 송은, 페이스갤러리, 떠오르는 유스퀘이크 등 서울의 곳곳에는 큐레이션이 훌륭한 갤러리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