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NING : 헛소리 하려고 무대에 올라온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무대 위에서 주욱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르겠지만, 웃기긴 엄청 웃긴다. “에이, 그게 말이 돼? 설마” 하는 반응보다는 그저 상황 자체를 즐기고 웃으면 되는 곳, 스탠드업 코미디 씬이다. 물 건너온 코미디인 만큼, 우리도 물 건너 사람들처럼 오픈 마인드로 지켜보자. 어느순간 눈물 흘리며 웃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될 수도.
지금 가장 하입받고 있는 스탠드업 코미디씬의 중심에 있는 곳, 서울코미디클럽에 다녀왔다. 그리고 서울코미디클럽의 주요 플레이어들이자 이 업계의 찐 프로 선수 네 분을 만났다.
800석을 매진시킨 남자, 김동하 님 그리고 800석을 못 매진시킨 남자 대니초 님. 메타 코미디 소속의 스탠드업 코미디언 손동훈 님, 그리고 코미디언 송하빈 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위 자기소개 멘트는 모두 인터뷰 참가자 본인 피셜이다.
대한민국 유일의 스탠드업 코미디 정기 공연장, 서울코미디클럽
누군가 서울코미디클럽을 스탠드업 코미디계의 프리미어 리그에 비유했다. 국내와 서울 곳곳의 코미디 공연장에서도 진짜 중의 진짜를 가려 소위 웃겨본 사람만 이곳 무대에 오른다. 그렇기에 서울코미디클럽의 무대에 오르는 이들도, 이곳에서 펼치는 농담 라인 하나마저도 단숨에 나온 건 없었다.
(대니초) 스탠드업 코미디는 한 번하고 버리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라인을 뺄 건 빼고 디벨롭하는 과정이에요. 관객들은 잘 뛰는 선수들이 매일 훈련하고 운동하는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은 셈이죠.
(손동훈) 서울코미디클럽에 오르는 라인들은 모두 다 시행착오를 겪은 것들이에요. 오픈 마이크나 다른 공연장에 거의 공짜랑 다름없는 무대가 있어요. 그런 곳에서 라인들을 실험해 보고 거기서 재미있을 수 있으면 또 수정해요. 계속 수정하면서 정말 제일 재미있을 때까지 만들고 난 다음에 서울코미디클럽과 유튜브나 인스타 등에 올리죠.
(대니초) 무대에 서는 플레이어들은 6년 전부터 스탠드업 코미디를 해왔던 사람들이에요. 저는 이곳의 사장이자 플레이어들의 코치죠. 오랫동안 실력을 갈고 닦고 스탠드업 코미디가 뭔지 아는 친구들을 영입해요. 저를 웃겼는지는 중요치 않아요. 저 친구는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면 영입해요. 하빈이는 비즈니스 목적이고요. (농담)
(송하빈) 6년전에 시작해 지금까지 남아있는 코미디언들을 보면, 거의 5년간은 돈 안 벌고 이 씬을 계속 만들자는 생각으로 버텼던 사람들이에요.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이 돈 버는 시기가 이제 드디어 온거죠.
웃음, 동기는 순수하지만 힘은 무엇보다 쎄다
김동하 스페셜, 플러팅-하빈샘의 스탠드업 코미디쇼 등 1인 단독 공연이 있는가 하면, 100분간 최소 4명 이상 무대에 오르는 올스타스와 10여 명이 주어진 5분 동안만 공연하고 내려가는 오픈 마이크 공연도 있다. 다양한 공연 포맷과 제각기 다른 매력의 코미디언들.
특히 다양한 사람들이 올라오는 오픈 마이크 공연을 보면 자연스레 좌충우돌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웃겼다가 잠시 갑분싸됐다가. 안쓰러웠다가 또 웃겼다가.
커졌다 줄어들었다 반복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사이에서 서울코미디클럽의 플레이어들은 어깨를 맞대고 모두 한 방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손동훈) 서울코미디클럽은 다양성을 중시해요. 플레이어의 성별이나 추구하는 코미디 등은 상관없이 재미있기만 하면 저희는 다 무대에 세울 의향이 있거든요.
중요한 건 목적지가 똑같다는 거죠. 저흰 웃음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동료들과 함께 가는 대한민국 최고의 크루이자 클럽입니다.
(김동하) 걸어가든 차 타고 가든 배 타고 가든, 웃음이라는 목적지로 간다고 보시면 돼요. 하빈이를 보러왔지만 동훈이한테 빠질 수도 있고, 이런 다양한 매력을 가진 곳이죠.
(대니초) 한국에서 처음으로 스탠드업 공연했을 때 한국어로도 먹힐까 걱정이 있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터지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에서도 먹히는 장르구나 하고 확신할 수 있었죠. 그날이 역대 최고로 터진 날이었고 아직까지도 그때만큼 터진 날이 없어요. 그날의 그 웃음 뽕을 계속해서 찾고 있어요.
(손동훈) 사람들이 국뽕, 이런 걸 말하지만 최고의 뽕은 웃음 뽕이에요. 정말 쎄요.
잘 웃기는 것 말고도 서울코미디클럽만의 시크릿 매력
공간을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무대와 테이블들. 테이블에는 메뉴주문 키오스크가 설치돼 있다. 단연 눈에 띄는 메뉴는 맥주와 칵테일이다. 제임슨과 호세 쿠엘보 등의 리큐르도 제공한다. 달큰한 술맛과 함께 즐기는 코미디쇼, 아무 생각 없이 웃기 좋은 환경이다.
(송하빈) 무대가 끝나고 코미디언들과 술 한잔하는 시간도 서울코미디클럽만의 매력이 아닐까 해요.
(김동하) 공연 때 관객분들이 술을 드시면서 보니까 ‘너무 재밌게 웃었다’면서 한 잔 사드려도 되냐고 제안해 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럼 같이 앉아서 마시면서 도란도란 얘기 나누기도 하고, 그런 순간들을 또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손동훈) 저희 코미디 공연을 보러 왔을 때 관객들이 한 주간의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간다고 생각을 하시면 좋겠어요. 스트레스 풀고 쌓인 거 다 풀고 가셨으면 해요.
(김동하) 그냥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저희가 바라는 지향점이기도 하고요.
(송하빈) 홍대 클럽은 그냥 춤추러 가는 거잖아요. 코미디 클럽에는 진짜 그냥 웃으러 오는 그런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스탠드업 코미디씬을 지금까지 끌어올린 사람들이자 지금 가장 핫한 씬에서 활동하는 이들. 편하게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네 사람에게는 언제나 웃음이 있었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들에게서 끈끈한 동료애와 웃음이라는 순수한 동기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종각역 모퉁이에 작정하고 웃기려고 모인 사람들이 가는 공간이 있다. 서울코미디클럽에서 오늘도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은 떨리는 마음을 붙잡고 애써 침착하게 무대에 오른다. 뜨거운 환호와 이어지는 시끌벅적한 웃음소리. 오늘 하루가 어땠든지 간에 한바탕 웃고 가니 왠지 뿌듯한 하루를 보낸 느낌.
서울코미디클럽은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 오후 8시와 토요일 오후 5시, 일요일 오후 3시에 공연을 연다. 관객들은 공연 시작 시간보다 일찍 입장해 음료와 안주들을 즐기며 공연을 기다릴 수 있다. 주요 캐스팅 일정과 공연 예약은 서울코미디클럽의 공식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예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