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학창 시절 배웠던 천재 시인이자 소설가 이상. 비운의 천재 작가 이상은 일본의 한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사실 그는 삶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살았다고 한다. 비록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조금이나마 그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소개한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십니까
스물일곱 해 남짓 살다간 비운의 천재 이상. 이상은 시인이자 소설가, 건축가, 화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예술인 중 하나로 생전에는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사후 그가 남긴 다양한 작품이 그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힌다.
활동 시기는 6여 년 남짓으로 짧았지만 약 2천여 점 이상의 작품을 남기며 한국 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으며, 그가 남긴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이상문학상은 현재 대한민국 문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중 하나로 4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1910년 지금의 종로구 사직동에서 태어난 이상은 보성고등보통학교를 거처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다. 보성고등보통학교는 보성고등학교(📍 서울시 송파구 양재대로 1278)로 명칭이 변경 되 아직도 송파구 오륜동에 위치해 있으며, 경성고등공업학교는 지금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서울시 관악구 관악로 1)의 전신이 된 곳으로, 이상은 이곳을 졸업한 뒤 조선총독부에서 건축기사의 일을 시작한다.
조선총독부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대한민국을 통치하기 위해 만들었던 건물로 조선의 정기를 끊는다는 명분하에 경복궁 안에 설치되었으며, 해방이 된 뒤로도 반세기 넘게 자리해 있다가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는 일환으로 1995년 철거되었으며, 지금은 이 자리에 광화문이 재건돼있다.
1933년 건강상의 문제로 건축 기사 일을 그만둔 이상은 ‘금홍’을 만나게 되고, 금홍과 함께 종로 1가에 제비다방을 차리는데 건축가였던 그가 이 다방의 공간을 직접 설계했다. 당시 남아있는 자료를 살펴보면 전면 유리로 된 안과 밖에 보이는 파격적인 구조의 현대식 공간이었다고. 이 제비다방은 지금은 ‘서울 종로구 종로 1가 33-1’ 부근이라고 추측된다고 한다.
경영난으로 1935년 다방 폐업 후, 여러 어려움을 겪던 이상은 1936년 변동림과 결혼 후 1937년 서구화된 문명을 접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지만, 사상불온혐의로 체포되고, 한 달 뒤 병보석으로 석방되는데 이미 악화된 건강은 돌이킬 수 없어 끝내 동경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4월 17일 27살의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후 변동림이 유해를 화장하여 미아리 공동묘지에 묻었으나, 이마저 6.25 전쟁 후 이 공동묘지가 사라지며 유해 역시 유실되었다.
서촌의 숨은 명소, 이상의 집
그가 한국 문학사에 남긴 업적에 비해 그의 자취를 실제로 찾아볼 수 있는 곳은 안타깝게도 많지 않다. 서촌에 있는 이상의 집이 그나마 그에 관한 가장 많은 자료를 발견할 수 있는 곳으로 이곳은 그가 3살 때부터 20여 년간 살았던 집터의 일부에 세워진 기념관이다. 하지만 이곳 역시 2008년 이상 가옥에 대한 등록문화재 지정이 해지되며 철거의 위기에 있었으며, 다행스럽게도 2009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이 국민은행과 일반인들의 자발적인 후원에 힘입어 부지를 매입하며 이곳을 보존, 새 단장을 거처 지난 2018년 12월부터 지금까지 운영 중에 있다.
새 단장을 거치며 시 75편, 소설 21편, 수필 19편, 서신 5편, 그림과 삽화 16점, 기타 자료 21점 등 156점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아카이브 자료를 구축하여 시기별로 전시 중이며, 중정으로 나가면 이상의 오랜 친구였던 화가 구본웅이 그린 초상화를 참조하여 만든 이상의 흉상을 만나볼 수 있다.
기념관의 한쪽에는 철문으로 된 공간이 나오는데 이곳은 바로 이상의 날개에서 묘사된 집을 형상화 한 곳이라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두컴컴한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갈 수 있는데 마치 자신에게 수면제를 주었던 아내 몰래 잠을 자지 않고 바깥을 바라보던 날개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스크린에서는 이상의 짧은 생애를 설명하는 영상이 나오니 천천히 감상해 보자.
기념관에서는 이상의 그림이 있는 기념엽서를 판매 중이며, 2천 원 이상 기부 시 커피를 내려마실 수 있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로 나와 도보로 10분 남짓 걸으면 된다.
🕒 오전 10시 ~ 오후 18시(점심시간 오후 12시 ~ 오후 13시 / 설 · 추석 연휴 휴관)
📍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7길 18